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헨리 클레이 (문단 편집) === 마지막 영광, 1850년의 타협안 === 결국 대통령 후보보다는 의회에 더 익숙했던 그는 상원의원으로 복귀하는데,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임기(임기 중 사망했다)였고, 동시에 그가 빛을 발하는 마지막 순간이 된다. [[미국-멕시코 전쟁]]으로 얻어낸 새 영토의 노예제 허용여부를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이 빚어지자 그는 1850년의 타협안을 제시하게 된다.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. >1) [[캘리포니아]]는 자유주로 편입한다. >2) [[유타 주]]와 [[뉴멕시코]]는 주민투표에 의하여 노예주의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. >3) 수도 [[워싱턴 D.C.]]의 노예제는 계속 허용하되, 노예 시장을 없앤다. >4) [[텍사스]]의 일부(36도 30분 이북 선)를 [[뉴멕시코]] 준주에 양도하고, 정부는 그 대가로 텍사스 주에 [[멕시코]]와의 전쟁에서부터 나온 비용 1000만 달러를 부담한다. >5) 도망노예 단속법을 강화한다. >6) 이 타협안은 주간의 노예 무역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. 그렇지만 이 타협안은 남북 모두에게 불만을 샀다. 서로에게 불리한 점이 있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. --원래 그래서 타협을 하는거지-- [[스티븐 더글라스]]의 설득으로 인준할 수 있었지만. 이것이 바로 위대한 타협으로도 불리우는 바로 그것이지만, 동시에 [[남북전쟁]]이 10년 뒤 일어났다는걸 생각하면 역시 미봉책에 불과했다. 참고로 당시 대통령 테일러가 급작스럽게 사망해 이 법안이 효력을 발휘한 것은 [[밀러드 필모어]] 때부터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220px-Henry_Clay_c1850s.jpg]] 타협안을 통과시킨 직후 [[결핵]]으로 인해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며, 1852년 사망한다. 사후 [[렉싱턴]]의 그의 집은 [[박물관]]이 되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